
정원의 계절은 언제나 설렘으로 시작된다. 겨우내 묻어 두었던 구근들이 깨어날 즈음, 마음 한편에서는 은은한 기대가 자라난다. 흙 속에서 조용히 잠들어 있던 작은 구근들이, 어느 날부터인가 초록빛 싹을 틔우고 땅 위로 고개를 내미는 모습은 마치 오랜 친구를 다시 만나는 기분이다. 하지만 그 순간만으로도 충분히 기쁘면서도, 한편으로는 꽃이 피어나기까지 기다림의 설렘이 더 크다. 얼마나 고운 빛깔을 품고 있을까? 얼마나 생동감 넘치는 모습으로 정원을 물들일까?
그리고 오늘, 마침내 그 기다림이 보상을 받았다. 붉은빛과 노란빛이 조화롭게 섞인 백합 한 송이가 내 앞에 피어나 있었다. 이 꽃은 단순히 아름답다는 말로는 부족하다. 아침 햇살 아래 빛나는 꽃잎의 선명한 색감, 마치 붓으로 한 땀 한 땀 칠한 듯한 섬세한 그러데이션, 그리고 꽃술 끝에 달린 붉은 가루까지. 모두가 작은 예술작품처럼 느껴졌다. 정원의 다른 꽃들도 물론 예쁘지만, 오늘의 주인공은 단연 이 백합이다. 처음 심을 때만 해도 이렇게나 화려할 거라 상상하지 못했다. 단지 구근 하나가 만들어 낸 이 생명력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.

백합을 바라보며, 구근을 심던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. 조금은 서툴게 흙을 파고, 작은 알뿌리를 심으며 봄을 꿈꾸던 시간들. 사실, 꽃이 피지 않더라도 초록의 싹만 볼 수 있어도 감사할 것이라 생각했었다. 하지만 오늘 이렇게 완벽한 모습으로 피어났으니, 그 기쁨은 배가 되고도 남는다. 꽃잎 끝을 물들인 붉은색은 마치 노을처럼 따뜻하고, 노란색 바탕은 봄 햇살처럼 밝다. 그 조화가 정원을 환히 밝히는 듯했다.

가만히 앉아 꽃을 바라보는 동안, 마음이 한없이 평온해졌다. 피어나는 꽃 한 송이가 주는 감동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크다. 이 백합은 단지 구경거리 이상의 존재였다. 정성을 다해 돌본 나의 노력과 기다림이 만든 결실이기도 하고, 자연이 보여 주는 놀라운 생명력의 상징이기도 했다. 이 작은 꽃이 내게 주는 설렘과 행복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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